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H씨는 방금 전 카페 옆자리에서 들려온 말에 빈정이 상했다.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커플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솔직히 지금 베이비 부머 세대가 가난하면 그건 병신 인증이야. 단군 이래로 가장 꿀빤 세대 아니냐? 운 좋게 국가의 초고성장기에 태어나서, 그게 자기 생애 주기랑 딱딱 맞아떨어지는 호사를 누렸는데, 남들 다 건물주 되고, 주식으로 대박나고, 대기업 임원되는 동안 혼자만 시류를 거슬러서 가난해지기도 어렵겠다."
"인정. 남자는 특히 그렇지. 그 사람들이 청년일 때는 대학만 나와도 평생 직장이 보장되는 시대였으니까."
자식뻘인 그 커플의 대화는 오늘도 아파트 관리실에서 걸려온 독촉 전화를 피하느라 집에 없는 척을 하다 단지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온 그를 겨냥해 근거리에서 쏜 화살처럼 느껴졌다.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주섬 주섬 노트북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인근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고, 싼 값에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H씨에게 자주가는 역 앞 칼국수 집은 작은 천국과도 같았다. 아, 천국 앞에 가성비를 붙여야지.
칼국수 집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은 5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것이 평범하고 무난해보이는 그 여자는 단골인 H씨에게 자꾸 추파를 던졌다. H씨만 보면 환하게 웃으며 셀프 서비스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빨간 글씨가 무색해지게끔 손수 물을 떠다주었고, 음식을 가져다줄 때면 '교수님, 교수님' 하며 스몰토크를 남발했다. H씨는 그 여자가 싫었다.
'감히 자기 주제에 나를......'
겉으로는 밝고 젠틀하게 미소를 지어주었고, 때로는 예의상 스몰토크에 응하기도 했으나 철저한 엘리트 주의로 무장한 그의 내면에는 그 여자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가득했다. 게다가 50대의 식당 종업원이라니...... 쪽팔려서 행여 남이 보거나 오해할까봐 걱정마저 들었다. 하지만 여기보다 싼 칼국수집이 근처에 없으니 발길을 끊을 수도 없어서 방문하는 빈도를 줄였을 뿐이다. 그리고 뭐가 됐든 간에 자신은 무조건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나한다고, 그럴만한 매력이 있는 남자니까 당연한 거라고 게걸스럽게 칼국수를 먹으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온 봄의 밤거리는 쌀쌀했다. 기분이 계속 좋지 않다. 이 나이까지 정교수 채용에 번번히 떨어진 것도 그렇고, 아까 카페의 커플의 대화도 그렇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식당 종업원의 플러팅도, 세상이 내 가치를 몰라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쓸쓸하다. 입 안과 숨결에 남아있는 칼국수 국물의 뒷맛이 불쾌하게 느껴진 그는 근처 맥도날드에 들어가 딸기 선데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사먹으며 기분을 달랜다. 의사는 그에게 고지혈증약을 처방하며 삼겹살과 새우와 계란,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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