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결혼을 하긴 하나요?" 그 뒤에 붙는 부차적인 말들은 각양각색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을 별로 안좋아하는데/밖에 잘 안나가는데/남자 or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데 등등... 요약하면 '지금 봐서는 결혼할 사람이 안생길 것 같은데' 라는 뜻입니다. 현재는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인데 과연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나?라는 질문이죠.
기본적으로 무지함과 순진함에서 나오는 질문이지만, 동시에 너무 수동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혼이란 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결혼식 당일에도 안하겠다고 엎으면 안하는 건데, 왜 자신의 자유의지는 쏙 빼놓고 묻죠? 어떤 사건에 대해서 운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사가 어려운 것이 맞지만, 반대로 운이 들어와도 자기가 거부하면 (그 시기가 지나면 자연히 운이 빠져서)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의 짝이 있어서 자신은 기다리기만 하는데도 거부할 수 없는 결혼을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발 운명와 인연에 대해 결정론적/숙명론적으로 접근하지 마세요.
또한 저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이 질문을 던지면서 본인은 결혼이나 이성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정말로 관심이 없으면 아예 안물어봐요. 그런 분들은 상담시간에 이 주제 자체가 등장하지 않고요, 심지어 제가 말하려고 해도 본인이 패스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세요. 관심이 있거나 엄청 하고 싶은데, 현실이 안따라주니까 답정너처럼 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 글이 특히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아무리 적중률이 높은 운명학으로 본다 해도 미래에 대해 100% 정해진 것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현시점, 한국인의 결혼의 여부에 대해서는 이것만 한번 짚어보면 답이 쉽게 도출됩니다. 사주는 정확히 똑같은 팔자가 60년 주기로 반복되죠. 그러니 여러분과 출생천궁도가 비슷하게 태어난 60살, 120살, 180살, 240살 많은 조상들은 똑같은 사주를 가지고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분들은 몇 살쯤 결혼하고 몇 살쯤 죽었을까요? 과연 240년 전에는 서른 살 기준으로 인구의 몇 퍼센트가 기혼상태였을까요? 몇 십년 전만 해도 생애 첫 연애운이 들어온 시점이나 두번째 연애운이 들어온 시점에 대개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결혼 여부를 단정짓는 위의 질문에 제가 확답을 하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되실 겁니다.
그밖에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사주팔자가 완전히 같은 분들을 상담하면서 결혼 시기가 2,3년 정도 차이나는 경우를 봅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만나진 상대방의 운명도 작용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돼죠. 사실 2,30년 전까지만 해도 역술인 입장에선 (비단 결혼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단정짓기가 수월했지만 전통적인 결혼상이 붕괴되고 있는 현재에 와서는 같은 운에 누군가는 법적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동거만 하기도 하니, 어떤 변수도 없는 정확한 미래에 대해 묻는 것은 질문 자체가 에러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역술인이야 말로 어떤 직업군보다 시류의 업데이트를 놓치면 안되는 직종인데, 쉽지가 않죠. 만약 옛날 식으로 또는 기계적으로만 해석하면 이제는 다 틀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럼 제가 결혼 여부에 대한 확답을 어떤 경우에도 절대 안주냐, 그건 아닙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실테지만 저는 'oo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거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고 표현합니다. 이 직업을 유지하는 동안에 부정확한 말로 내가 책임지지 못할 타인의 미래를 단정짓는 일이 제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경험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을 땐 사건이 일어나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전할 당시에는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지만 때가 되면 후기가 오죠....... 뭐, 원래 그런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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